[수요예배] 성령이 충만하면 (사도행전 6장 中) > 이름 없는 성도의 교제

본문 바로가기

이름 없는 성도의 교제

[수요예배] 성령이 충만하면 (사도행전 6장 中)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름없는교회 댓글 0건 조회 1,462회 작성일 19-02-05 22:43

본문

사도행전 6장에는 초대교회에 집사를 세우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초대교회에 속한 유대인들은 히브리파와 헬라파 유대인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히브리파 유대인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쭉 신앙을 지키며 살아왔던 사람들이고

헬라파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상황들로 인해서 예루살렘을 떠나서 타국에서 살면서도 신앙을 지켜왔던 사람들입니다

초대교회를 구성하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 안에는 이러한 두 무리의 유대인들이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의 규모가 커지고 사람이 많아지면서 사도들이 직접 관할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생기게 되면서,

구제 사역에서 헬라파 유대인 편의 과부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일로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이 일들을 맡아서 사역할 사람들이 필요했고, 그런 이유로 초대교회 안에 일곱 집사들이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 세워진 '집사'들은 구제 사역을 돌보고, 더불어 사도들이 말씀사역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세워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실제 사역의 이야기들을 보면 일곱 집사들 역시 구제의 문제에만 매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복음 사역도 감당하고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사도행전 6장에는 일곱 집사 중의 한 사람인 스데반이 헬라파 유대인들과 논쟁을 하다가 고소를 당해서 재판을 위해 공회에 서게 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스데반은 어떤 사람입니까?

성경은 스데반에 대해서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권능을 민간에 행한 사람이라고 기록합니다

또한 일곱 집사를 세우는 과정에서 밝혀진 집사의 조건을 보면,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10절에서는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이 비록 사도는 아니었지만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의 지혜와 권능이 넘치는 주의 종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스데반이 헬라파 유대인들(비그리스도인)과 논쟁을 벌인 것입니다.

 

(9) 이른 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

 

자유민들이란 로마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자유를 얻게 된 유대인들, 또는 그들의 후손들을 가리킵니다

즉 '디아스포라'라고 불리는 사람들에 속하는 사람들이 바로 자유민들입니다. 이들이 스데반과 무슨 논쟁을 벌였는지, 그 주제가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이들이 스데반을 고소한 이유에서 나사렛 예수의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아 스데반이 이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있었던 것이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들이 논쟁할 때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는 스데반을 그들이 능히 당해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거짓증인들을 세워 스데반을 공회의 재판 자리에 세웠습니다


그들이 스데반을 고소한 이유는 성전 모독과 율법 모독입니

성전과 율법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너무도 중요한 자존심과 같은 것입니다. 그들의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이 성전이고 그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율법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거룩한 성전과 율법을 나사렛 예수가 헐고 다시 고친다는 스데반의 설교는, 유대인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들의 모든 근간을 흔들어버리는 충격적인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스데반이 전하는 복음을 이유로 그를 고소하고 재판자리에 세운 것입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하나님의 성전과 모세의 율법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스데반을 고발한 이 사람들이 도리어 거짓증인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의 아홉 번째 계명이 바로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하지 말라'입니다

거짓증인이 되어서 무고한 이웃을 죄인으로 만들고 이웃의 생명과 자유를 위협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범죄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스데반에게 율법을 모독했다고 말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지금 그 율법을 지키지 않고 모독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을 위해 의롭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들 안에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 장면입니다

거룩한 척 하고 있지만 사실 그 속은 거룩하지 못한 겁니다. 그들이 스데반을 고발한 것은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결국 자신들의 이권을 챙기기 위한, 자신들의 종교적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한스데반 때문에 무너진 자존심 때문에 보복을 하고 있는 것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유형의 죄의 유혹은 어느 정도 신앙생활을 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 쉽게 나타납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율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스데반의 말이 귀에 거슬렸을 것입니다

잘 모르는 상태였다면 내 신앙생활 돌보느라 다른 사람 생각할 겨를도 없을 텐데, 잘 안다고 생각되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신앙에 필요한 것은 자존심이 아닙니다직분이나 어떤 신앙생활의 경력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 이런 것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진실하고 순수한 마음입니다. 지금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지금 내가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있는가

지금 내 마음 중심에 하나님께서 자리 잡고 계신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은 율법의 잣대는 나에게로, 은혜의 잣대는 이웃에게로 내미는 사람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와 같더라

 

스데반은 지금 재판의 자리에서 죄인 취급을 받으며 붙잡혀 있습니다. 그런데 앉아있는 사람들이 스데반의 얼굴을 보니까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죽임을 당할 위협에 처했음에도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안에 성령께서 함께 하고 계시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성령께서 그 마음 중심에 계시면 담대하고,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진짜 하나님의 사람은 숨기고 싶어도 숨겨지지 않는 법입니다

종교적인 권위를 지키려고, 정통성을 지키려고, 자존심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써도, 어떠한 세상적인 방법들을 다 동원해서 

겉모습은 거룩하게, 그럴싸하게 만들어 보이려고 애써도 할 수 없는 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정말로 없는 것을 어떻게 있는 것처럼 만들 수 있겠습니까? 내 안에 하나님이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마음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어둠 속에 작은 촛불 하나가 주변을 밝히는 것과 같이 드러내 보이려고 애쓰지 않아도 드러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 모습이 빛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내 안에 성령이 충만하면 천사의 얼굴이 보여 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 마음 중심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길 원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여러분을 통해 천사의 얼굴을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 주소 : 경기도 오산시 운천로13, 1층 동네와플    전화 : 010-4088-1775    팩스 : 02-6925-7204
  • 대표 : 최영훈 목사    이메일 : noname_church@naver.com
  • Copyright 2018 이름없는교회. All Rights Reserved.
  • 주소 : 경기도 오산시 운천로13, 1층 동네와플
  • 전화 : 010-4088-1775
  • 팩스 : 02-6925-7204
  • 대표 : 최영훈 목사
  • 이메일 : noname_church@naver.com
  • Copyright 2018 이름없는교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