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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성도의 교제

[수요예배] 하나님만 바라보라 (사도행전 28장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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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름없는교회 댓글 0건 조회 14회 작성일 19-07-09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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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자신을 보여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세심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고, 같은 맥락에서 오늘 본문말씀을 살펴볼 필요도 있습니다.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난 배가 바람에 의해 한 섬까지 밀려왔고, 배는 난파되었지만, 배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생명을 건짐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진 것임을 성경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바울의 손에 사람들을 맡기신다 하셨고, 모든 것을 잃고 좌절한 사람들의 전면에 사도 바울이 나서면서 소망의 빛이 밝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앞선 말씀은 '사람들이 다 구조되니라'로 끝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난파된 배에서는 모두가 살았습니다. 육지에 상륙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기상 겨울로 접어드는 날씨에 비까지 내리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난파 직전에는 식량까지 다 버렸고, 배가 부서지면서 사람들이 바다로 뛰어들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건짐 받은 생명을 유지할 수단이나 방법이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도움을 준 게 멜리데의 원주민들이었습니다. 다행히 그들은 난파된 배에서 구조된 많은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원주민들이 특별한 동정을 베풀었다고 말합니다.

멜리데 원주민들이 보여준 특별한 동정은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불을 피워주고, 실제로 건짐 받은 그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현실적인 도움을 주었습니다.

왜 그 때, 거기에서, 그 섬의 원주민들은 276명이나 되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동정을 베푼 것일까요?


멜리데는 헬라문화의 영향권 아래 속한 지역입니다. 자연히 그들의 종교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기반을 둔 다신교 신앙이 주효했을 것입니다

신화적인 신앙을 가진 당시 사람들에게 바다는 신화적 장소였고, 신의 영역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다에서 배가 풍랑을 만나 난파되었다는 것은 신의 노여움을 산 결과로 치부하는 것입니다.

멜리데 섬에 상륙하고 난 뒤에 바울이 불을 피우려고 나무를 만지다가 나무 사이에 숨어있던 독사에게 물린 사건을 보는 관점도 같은 것입니다

이 사람이 바다에서 어떻게 신의 심판을 피해 살아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죽어야 할 정도로 죄질이 나쁜 사람은 결국에는 신의 심판을 피해갈 수 없다고 생각했겠지요.

그래서 독사에 물린 바울을 보면서 원주민들이 말하길,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공의라는 단어가 헬라어 원어로 '디케'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이름입니다

그래서 멜리데 원주민들은 정의의 여신이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죄인인 바울에게 독사를 보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원주민들이 바울을 지켜보았습니다. '이제 곧 죽겠지?' 하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사도 바울은 무사했고, 그들의 생각이 틀렸다는 게 증명되면서, 오히려 사도 바울을 신적 존재로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과거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고친 사건으로 인해 바울과 바나바가 헤르메스와 제우스로 오해를 받은 것과 비슷한 상황인 것입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좋아하는 방법으로 보여주신 건 아닐까?'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이런 영향이 없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바로 뒤에 보면 사도 바울은 멜리데 섬을 관리하는 최고 책임자로부터 친절과 호의의 대상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사도 바울을 통해 멜리데의 병자들이 고침을 받게 하십니다.  


생각해봅니다. 아무것도 없이 생명만 건짐 받은 276명의 사람들이 겨울을 나는 동안 생명을 연장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후한 대접을 받고 3개월을 머물다가 떠나는 배에 필요한 물자까지 얻어갈 수 있었던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일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의 맥락에서 하나님의 뜻은 사도 바울을 로마 황제 앞에 서게 하시려는 것에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역사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사람들의 계획과 딱 맞아서, 사람이 추측 가능한 경로들이나, 기왕에 가는 길 편안하게 갈 수 있게 도와주시지는 않으셨다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뜻하신 대로 이루어 가신다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모든 선택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절망할 정도의 어려움을 당했지만 그런 하나님의 선택이 가장 좋은 이유는

죄인의 신분으로 끌려가던 사도바울이 여정을 이끄는 주도자가 되게 하시고, 더불어 생명의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증거하게 하시고, 모든 사람들 앞에 그것을 드러나게 하셔서

바울로 하여금 전능하신 하나님을 증명하게 하시는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고난이라는 어둠 때문에 오히려 많은 이방인들 앞에서 구원자 되신 하나님이,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반짝반짝 빛나 보여진 것입니다.

유라굴로라는 광풍은 모든 사람들이 삶의 목적과 생명을 향한 소망을 잃어버리고 어둠에 빠지게 만들었지만 

다시금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소망을 빛으로 바라보게 만들었고, 하나님의 뜻 바깥으로 벗어나려는 삶들을 하나님의 뜻 안으로 끌어오게 결과했습니다.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드립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수단인가, 목적입니까

하나님을 수단으로 삼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의 과정에 순종하는 일이 굉장히 어려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음의 위험으로 내몰리는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뜻 안에서 뜻 밖으로 자신의 인생을 이동시키길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자체가 목적이 된 사람들은 인내와 기다림에 익숙해집니다. 왜냐하면 모든 선택권이 하나님께 있고, 그 하나님의 선택이 가장 좋은 것임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수단이냐, 목적이냐는 질문은 결국, 내 인생의 주인이 나인가, 하나님인가를 묻는 질문인 것입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요셉은 종과 죄인으로 13년을 살면서 20대의 청춘을 다 소비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성경은 인생의 최악의 시절을 살던 요셉을 가리켜서 형통한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왜냐하면 그때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탈출시키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요단 강을 앞에 두고 바라보면서도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괜찮았습니다

왜냐하면 모세에게는 약속의 땅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풍랑에 배가 부서지고, 죽음의 공포가 눈앞에 놓여 있어도, 두려워해야 될 이유가 바울에게는 없었습니다. 독사가 손을 물고 있어도 당황할 이유가 바울에게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간직한 사람이었고, 그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과정에 사용되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풍랑에 부서져 나가는 배를 주목하고, 손을 물고 있는 독사를 주목할 때, 바울은 뜻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보여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주목하는 일들이 처음부터 쉽지는 않겠지만, 하나님께서는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는 이름없는교회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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