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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 하나님을 믿노라 (사도행전 27장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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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름없는교회 댓글 0건 조회 1,433회 작성일 19-07-02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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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황제 앞으로 가는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에게는 아무런 결정권이 없었습니다. 공식적으로 죄인 신분이었던 사도 바울은 백부장 율리오의 손에 맡겨져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람의 방해가 심해서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됐고, 항로도 수정이 되면서, 그레데 섬의 미항이라는 곳까지 떠밀려오게 되었습니다.

성경에는 금식하는 절기가 지났다는 것을 알려주는데, 이것은 그 때가 적어도 10월 중순이나 말 정도 되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이 시기는 강한 바람 때문에 11월 즈음부터는 지중해 항해가 금지되는 시기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레데 섬에서 항해금지가 풀릴 때까지 겨울을 나야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12절 말씀을 보면, 지금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레데 섬 안에서 겨울을 보내야 하는데, 지금 배가 정박한 곳이 그레데섬의 미항입니다. 이곳은 규모나 환경이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을 수용하기에 적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룻길 정도 거리에 뵈닉스라는 그레데 대표항구가 있는데, 이곳이 더 크고 여력이 있어보이니까 거기로 가자는 의견이 나온 것입니다

미항에 남을 것인가, 뵈닉스로 갈 것인가 그리고 이 일을 위해서 배를 타고 하루를 더 이동할 것인가, 배를 띄우지 말 것인가의 결정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항해하지 말자고 주장했지만 바울에게는 선택권이 전혀 없었습니다. 


순한 남풍을 힘입어 항해를 시작했는데, 갑자기 동북쪽에서 유라굴로라는 폭풍우가 불어 닥쳤습니다. 배는 손을 쓸 겨를도 없이 바람에 쫓겨나버렸다.

전문가들의 능력도 기술도, 예측과 판단을 위한 지식이나 지혜도 대자연 앞에서 무력함을 드러내 버린 것입니다

들은 그저 갑자기 찾아온 거대한 위협 앞에서 생명을 부지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과 행동만 할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제 자신들이 통제 불가능한 위기 앞에서 생명을 위해 선택권자들은 하나씩 포기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먼저 짐을 버렸습니다. 화물선에 잔뜩 실린 곡식들, 그들은 재산을 포기한 것입니다. 선주와 선원들이 이 배를 항해하는 목적은 곡식을 날라주고 돈을 받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위기 앞에서 그들은 항해의 목적을 잃어야 했습니다.

그 다음날에는 배의 기구들까지 버렸습니다. 배의 기구들은 배를 조정하고 운행하기 위한 것들, 바다 위에서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들을 버린 것입니다

그들이 타고 있는 배는 그 기능을 잃었습니다. 당장에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미 그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그 후로 여러 날 해도, 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해와 별은 방향을 찾는 수단이었습니다. 그들은 폭풍우 때문에 바다 위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폭풍도 그치지 않았다. 여기에 먹을 것도 떨어졌다구원의 여망이 없어졌다는 건 이들이 무력함을 절실히 깨달았다는 말입니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았고, 그렇게 소망을 잃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들은 재산을 포기했고, 생명을 보호할 수단을 포기했고, 마지막에는 소망을 포기했습니다

그들은 항해의 목적을 잃었고, 그들의 배는 기능을 잃었고, 배 안의 사람들은 삶의 목적을 잃었습니다.

선택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선택권이 박탈되었을 때, 그 상실감은 절망으로, 구원의 여망을 잃게 됩니다.


그러나 모두가 두려워하는 가운데, 안심하기를 권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하나님의 사자를 통해서 두 가지를 말씀하셨는데,

 하나, 너는 가이사 앞에 서야 한다

 둘,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이 말씀은 지금 여기서 모든 게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이 바다 위가 아닌 로마의 황제 앞에 사도 바울을 데려다 놓으시려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는 것은 그들의 생명이 너에게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사도 바울의 고백은 이것입니다.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그 믿음이라는 것이 추상적인 관념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은 관계 안에 살아있는 현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선택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선택권이 없더라도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그 모든 선택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그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믿음의 반대편에 서있는 건 불신이 아니라 두려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다 위에서 폭풍우에 끌려가더라도 두려움이 없다는 건 믿음이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폭풍우를 만난 배와 두려움에 빠져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복음서에서도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발견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갈릴리 호수를 건널 때에도 이런 장면이 있었습니다. 뱃사람이라 자부하던 제자들이 폭풍우를 만나 손쓸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예수님을 깨우고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바다를 잠잠하게 하시면서 도리어 제자들을 책망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건 제자들의 믿음 없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에 찾아든 두려움이었습니다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건너가자 하셨고, 예수님께서는 호수 건너편으로 가시고자 뜻을 세우셨는데, 

그 과정에서 찾아온 어려움에 시선을 빼앗기고 마음을 빼앗기면서 제자들이 혼란하게 된 것입니다.

제자들이 위협이라 생각했던 것은 호수를 건너는 데에 사실 아무런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호수를 건너기로 뜻을 세우신 예수님께서 그 일을 단념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우리가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깨뜨리지 않는다면, 우리 안에 두려움이 찾아들 틈이 없어질 것입니다.

지금 사도 바울의 모습이 그런 것입니다. 모두가 두려워하고 있는 순간에 그에게만큼은 두려움이 파고 들 틈이 없었던 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하나님의 뜻은 바울을 로마로 보내겠다는 것이고, 배에 탄 모든 생명을 사도 바울에게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뜻 안에 우리의 삶의 목적을 맞춰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선택권을 하나님께로 넘겨드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하나님께서는 모든 문제보다 더 크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풍랑에 맞서려고 덤비면 이건 답이 안나오는 싸움일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께서 전면에 서시고 내가 따라가면 풍랑에게 답이 없는 싸움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이 고난과 문제를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유라굴로는 항해를 방해하기 위한 고난이 아닙니다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돌리고, 모든 선택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확인하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굳게 세우기 위한 은혜의 도구입니다

우리 앞에 놓인 풍랑을 바라보며 낙심하지 말고, 더 크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가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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