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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 거짓맹세와 금식 (사도행전 23장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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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름없는교회 댓글 0건 조회 1,459회 작성일 19-06-04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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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공회 안에서 사도 바울을 죽이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이 말은 사도 바울을 죽이겠다고 금식하면서 맹세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문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그들의 금식은 목적부터 옳지 않습니다.

구약의 이사야서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금식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사 58:6-7)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금식은 어려운 이웃을 위한 삶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목적이 바르지 않은데도 겉으로 슬픔을 표현하거나 형식적으로 금식하는 것은 금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겉치레식의 경건의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믿음을 증명해주지 않습니다. 그건 하나님을 잘 모르고 하는 행동입니다.  

지금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금식을 선포했습니다. 바울을 죽이기 위한 금식, 이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금식이 아닙니다.

 

두 번째, 그들은 맹세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맹세하지 말라고 가르쳐줍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무능력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맹세라는 건 꼭 지켜야하는 것인데, 우리는 한치 앞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도 모릅니다선과 악, 참과 거짓을 분별할만한 지혜도 없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뜻에 대해 알 수 없고, 근본적으로 악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이 충돌할 때, 그 상황에서 내 뜻을 꺾고 내 욕심과 생각을 지워내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맹세를 하고 지키지 않으면, 그것은 도리어 자신에게 죄가 될 뿐만 아니라, 헛된 맹세는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일이 되기 때문에 맹세하지 말라고 가르쳐줍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 않겠다고 굳게 맹세했다. 

이것은 자신들의 신념을 지켜내기 위한 분노표출의 방법이었고,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결정에 호응해 주시기를 간청하기 위한 경건의 모양일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주인의 뜻은 고려하지도 않고 자기들이 마음대로 뜻을 세워놓고 주인더러 도와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냥 간청하는 것이 아니라 금식과 맹세로 협박하듯이 요청하는 모양인 것입니다. 비뚤어진 믿음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위한 행동인가, 자기 신념을 위한 행동인가..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이 충돌할 때, 또는 하나님의 말씀과 내가 가진 지식이 부딪칠 때,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의 기준이 대립할 때

어렵더라도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선택할 수 있는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뜻을 꺾어야 합니다. 내 욕심은 지워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결국 유대인들의 금식과 맹세의 결의는 하나님께서 깨뜨리시고 무너뜨리십니다

세 사람이 등장하는데, 먼저 바울의 생질이 등장합니다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는 계획을 우연히 듣게 되어 이것을 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바울의 생질을 통해 전해진 이 음모가 다시 천부장에게로 전달되었습니다. 천부장은 경계하면서 밤 사이에 곧바로 바울을 가이사랴 지방의 벨릭스 총독에게로 이송합니다

성경에 보니까,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과 창병 이백 명이 동원된 이송작전이었습니다. 이 군대가 동원된 이유가 뭘까요? 바로 바울을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천부장이 벨릭스 총독에게 바울을 보내면서, 편지를 쓰는데, 내용은 바울이 유대인들의 율법문제에 휘말려 있고, 조사해보니까 바울을 죽이거나 결박할 사유는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벨릭스 총독은 사도 바울을 넘겨 받으면서 고발한 자들이 올 때까지 보류시켰습니다. 그리고 군인들에게 바울을 지키라고 명령합니다

물론 도망가지 않게 지키라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 상황이 사도 바울이 테러당할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어찌되었든 지키라는 말은 보호조치의 일환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려고 결의했지만, 하나님의 뜻은 바울을 보호하는 일에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40명이 칼을 들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오백명 가량의 로마 군대와 로마의 공권력을 사용하셔서 바울을 보호하시고 안전하게 이동시키셨습니다.


말씀을 보면서 정말 궁금한 것은 사도 바울을 죽이기까지 먹지 않겠다고 했던 그 사람들은 정말로 끝까지 먹지 않았을까요

그들의 작전은 실패했고, 사도 바울은 죽지 않았는데, 맹세처럼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으면서 굶어 죽었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5:2) 그들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

 

인정하면 아프고 쓰리지만,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구약의 사람들이 그랬고, 신약에서도 그랬고, 오늘 우리들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인정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진실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처지를 인정해야 필요를 깨닫고 구할 수도 있습니다.

뜻을 세우시고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고백한다면, 우리는 마땅히 그분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께 맡겨져 있다면 우리는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삶의 결론은 하나님이고, 순종이 답이라는 진리가 깨달아지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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