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 새 시대,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누리는 비결 (마 9: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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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름없는교회 댓글 0건 조회 245회 작성일 23-10-11 00:58본문
유대사회에서 금식을 실천하는 일은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금식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슬픔과 회개를 표현하며,
이스라엘의 회복을 바라고 기다리는 의미에서 행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태의 집에서 여러 죄인과 함께 식사하실 때,
요한의 제자들이 나아와 금식하지 않는 것을 두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을 깨달았다면
"왜 금식하지 않느냐?"고 질문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슬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신랑되신 예수님을 맞이하는 신부된 이스라엘로 표현되는데,
신랑되신 예수님께서 지금 함께 계시는 식사자리는
슬퍼해야 할 자리가 아닌 기쁨의 잔치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일 수 없는 이유는
튼튼한 생베조각이 오히려 낡은 옷을 잡아당겨 오히려 찢어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낡은 옷을 덧대주시려고 오신 게 아니라 새옷을 지어주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새 포도주가 발효되면서 낡은 부대를 팽창시켜 터뜨리기 때문입니다.
옛 율법의 틀 안에 예수님을 가둘 수 없는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완성하시고 성취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 비유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이제는 새 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실 때 한 관리가 나아와 예수님께 믿음을 고백합니다.
마가복음에는 이 관리가 회당장 야이로라고 나옵니다.
그는 유대사회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었지만 예수님께 도움을 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은 딸을 살리실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으로 가는 길에 12년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등장합니다.
이 여인은 오랜 육신의 고통과 더불어
율법에 따라 부정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마음의 상처까지 안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예수님의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믿음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께서 믿음으로 구원받았음을 선언하셨을 때 여인은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죽은 딸의 손을 잡으셨을 때 소녀가 살아났습니다.
혈루증을 앓던 부정한 사람과의 접촉도, 시신에 손을 대셔도,
예수님께서 부정해 지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의 거룩함이 그들에게 생명력으로 전달되었습니다.
옛 율법에 매여 예수님의 정체를 깨닫지 못한
바리새인이나 요한의 제자들과는 달리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온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여신 새 시대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열어주신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비결은
오직 믿음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믿음으로,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은혜가 우리 안에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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