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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성도의 교제

[수요예배] 말씀의 능력 (사도행전 14장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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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름없는교회 댓글 0건 조회 1,425회 작성일 19-04-02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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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서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을 고쳐주었습니다. 

이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발을 쓰지 못했던 사람이었고, 평생을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고 성경은 소개합니다

사도행전 안에서, 나면서부터 걷지 못했던 사람이 고침을 받은 이야기는 오늘 14장과 앞서 3장에서 두 번 등장합니다. 

3장과 14장에 나오는 걷지 못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비교해보면, 그들이 사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고침 받고 걸을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의 흐름와 결론은 거의 비슷합니다.

그런데 분명히 다른 점도 있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두 사람의 환경입니다. 3장에 나온 사람은 유대인이었고, 이스라엘의 중심인 예루살렘 성전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사도 베드로와 요한을 만났습니다.

반면에 14장에 나오는 사람은 이방인이었고, 루스드라라는 이방땅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사도 바울과 바나바를 만났습니다. 


또한 이 두 사람의 이야기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믿음입니다.

 

(9)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14장에서 사도바울이 이 사람을 주목하기 전까지 이 사람은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이 이 사람을 주목하기 전까지는 이 사람이 먼저 사도바울을 주목하고 있었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이 사람에게는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있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반대로 3장의 성전 미문에 앉았던 사람은 베드로와 요한이 지나가는 순간에도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그 사람을 먼저 주목하였고, 그 사람에게 우리를 보라라고 말하고 난 후에야 그 사람은 눈을 들어 사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3장에서는 성전미문에 앉았던 그 사람에게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있었다는 말이나, 그의 믿음을 유추해 볼만한 어떤 근거도 찾을 수 없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두 사람이 고침을 받을 수 있었던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지만

엄밀히 말해서 성전미문에 있던 사람은 사도 베드로의 믿음으로 인해 더불어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그는 사도 베드로의 손을 의지하여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14장에 등장하는 사람에게는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있었다고 분명히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면서부터 걷지 못했던 이방인에게 믿음은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요?

우리는 이 사람이 처음부터 사도 바울의 말을 듣고 있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듣고 있다는 말의 원어적인 의미를 보면 이 사람이 바울의 말에 관심을 갖고 경청하고 있었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열심히 듣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 열심의 정도는 결과적으로 자신이 들은 말에 따라 순종할 수 있을 만한 결단이 서있는 열심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일어서라고 명령했을 때, 의심하지 않고 일어서 걷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자유롭지 못한 다리로 인해 피할 수 없어서 듣게 된 말씀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들려지기 시작했을 때, 복음이 이 사람 안에서 내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는 동안에 이 사람 안에서 생명을 향한 강한 열망과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병자를 고치시고 심지어 죽은 자까지 살리신 예수님의 이야기, 죽음까지도 이기신 부활의 주

생명의 주인이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자신도 그분의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음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말씀이 들려지는 동안에 '예수님을 만나기만 한다면 나도 걸을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나면서부터 걸을 수 없었던 장애를 가진 사람입니다. 단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고, 심지어 아기 때 걸음마 조차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걷고자하는 마음의 열망은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걸을 수 있겠다는 소망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 시대에 치료라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고, 걸어보고 싶다는 열망이 크면 클수록 부딪쳐오는 현실을 인정할 때마다 마음 속에 절망만 커지는 것을 그가 수도 없이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일찌감치 포기하고 체념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바울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으면서 가능성을 넘어서 소망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 소망을 향한 강한 마음의 열정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향한 믿음으로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적은 한 번도 걷지 못한 사람이 두 발로 서서 걷게 되었을 때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꿈도 소망도 없던 사람이 마음으로부터 예수님을 통해 꿈을 꾸고 소망을 가지기 시작한 그 시점에서부터 이미 기적은 시작된 것입니다.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복음이 필요한 사람을 향해 생명을 전달해주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담긴 사도 바울의 눈이

소망을 발견한 기쁨으로 가득찬, 영원한 생명을 향한 열망이 가득한 이 사람의 눈과 마주쳤을 때

바울은 이 사람 안에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바울은 그 사람에게 일어설 것을 명령했고 그는 순종함으로 고침 받았습니다.


다시 한 번 질문합니다. 이 사람에게 구원을 얻을 만한 믿음은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1: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서 나온다고 말씀합니다

말씀의 능력은 위대합니다. 그 말씀은 살아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력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듣는 가운데 우리의 심령은 더욱 강건해지고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의 능력과 생명력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또한 복음은 인간을 걷지 못하고 주저앉도록 얽어매는 모든 죄악의 사슬을 끊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말씀의 능력은 모든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오늘 우리가 능력의 말씀을 가까이에 두고도 그 능력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제대로 듣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루스드라의 걷지 못하는 이 사람은 선포되는 주님의 말씀 앞에 열심을 가지고 경청했습니다

그 열심이란, 그 말씀대로 즉시 순종할 결단이 서있는 열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는 반드시 순종하리라는 마음의 결단을 가지고 경청해야합니다

그렇게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소망을 허락하시고, 꿈을 꾸게 하시고, 주신 언약의 말씀대로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는 확신, 곧 믿음을 불어 넣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말씀의 능력은 이미 우리 안에 믿음이 일어나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기적처럼 역사하게 될 것임을 반드시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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