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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안수, 안수기도라는 건 정확히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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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름없는교회 댓글 0건 조회 1,063회 작성일 21-07-22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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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하신가요? 최영훈 목사입니다.

갑자기 웬 안수냐구요?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계셔서요.

저도 대단한 지식을 가진 게 아니라 명쾌한 답변을 드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필요한 부분인 것 같아서 성경을 보면서 정리한 생각들을 조금 나눠보려고 합니다.

 

'안수'라는 것은 말 그대로 '손을 대는' 신체적인 접촉의 행위를 말합니다.

아마도 보통은 목사님이 성도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장면을 떠올리실 것 같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안수, 안수기도인 것이죠.

사실 저도 깊이 생각해 보지는 않았지만안수라고 하면 특별한 기도 정도로 여겨왔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 부흥강사로 오신 목사님들이 안수를 통해 축복과 치유사역을 하시던 이미지가 강한 탓일 겁니다.

 

그러면 질문을 드려봅니다.

여러분은 안수받는 것을 선호하시나요? 왜 그렇습니까?

안수기도가 중보기도나 다른 형태의 기도보다 더 능력 있는 기도라고 생각하시나요?

축복이나 치유의 능력이 더 탁월한 기도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그래도 목사님이 손을 대고 하는 기도니까 뭔가 다를 거라는 기대가 있으신가요?

 

성경을 찾아보니 구약에서 신약까지 안수에 관한 기록들이 많습니다.

안수의 목적이나 기능들도 다양합니다.


먼저 구약시대에는 희생제사를 드릴 때 짐승의 머리에 안수했습니다.

죄를 전가하는 상징적인 행동입니다. 그러나 상징이 실제로 실현될 수 있었던 것은 그 행위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으로서 지켜졌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는 상징적인 행위로서의 순종이었지만, 그걸 실현화시키신 건 하나님의 능력이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야곱이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축복할 때에도 머리에 안수를 했습니다. 여기에서 안수는 축복의 행위로서 역시 상징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안수를 통해 전해진 복은 야곱이 아브라함으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언약과 관계된 하나님의 복이며

야곱이 손의 위치를 바꾸어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받을 복을 바꾸는 상식 밖의 행동을 보여준 것을 통해 어느 정도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추측할 여지를 남겨주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언약이 언제나 안수를 통해 전해졌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또한 공동체 안에서 사람을 세울 때 안수를 하기도 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별된 레위인들을 하나님 앞에 드릴 때 안수했고, 모세가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울 때도 안수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일곱 명의 일꾼을 세울 때 사도들이 안수했고, 안디옥 교회가 바나바와 바울을 파송할 때에도 그렇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안수의 기록들을 볼 때, 안수라는 행위 자체가 가지는 특별한 의미는 없다고 보여집니다.

다만 그것은 전통적인 축복의 상징이었고, 연합의 자연스러운 징표였고, 종종 치유에 사용되기도 했는데, 그것은 예수님과 사도들을 통해서 보여졌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안수 대상은 어린아이들이나 질병을 앓고 있던 병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경우 몸의 질병에 대해 안수하심으로 치유를 행하셨는데

특이한 점은 병자들을 고치실 때는 안수하셨지만, 귀신들린 자들을 회복시키실 때에는 오직 말씀으로만 선포하시고 안수하지 않으셨다는 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왜 병자들에게만 안수하셨을까요? 

생각해 보면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쫓아내시듯이 말씀으로만굳이 안수하지 않으셨어도 치유의 능력을 행하실 수 있으셨을 겁니다.

이 말은 안수라는 행위 자체가 능력을 가지고 있거나, 능력을 불러오는 수단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분명 치유를 행하실 때 종종 안수라는 행동을 선택하셨습니다.

굳이 필요하지 않은 절차를 직접 넣으신 것은 치유의 대상을 위한 배려이자 사랑의 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당시에는 장애나 질병을 앓는 것에 대해 죄의 대가로 여기며 부정하게 생각했습니다

병든 사람, 피 흘린 사람, 죽은 시체를 만지는 것은 자신을 부정하게 만드는 행동이었기 때문에 피해야 할 행동이었습니다

심지어 나병환자들은 자신을 부정함을 외치며 사람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해야 할 책임까지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소외된 그들에게 친히 그들에게 다가가셔서 손을 대셨습니다

나병환자를 만져주시고(막1:41),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실 때에도 손을 대셨습니다.(눅7:14) 

예수님의 안수는 그들의 아픔의 자리까지 내려가셔서 내가 지금 너와 함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랑이 없이는 할 수 없는 행동으로 그 사랑을 전하심과 동시에 그들을 회복시키셨습니다.

분명 예수님의 안수는 능력의 도구가 아니라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안수기도 자체에 어떤 특별한 옷을 입히려고 하지 마십시오.

성경에도 안수에 대해 정의하거나 손을 대는 행위 자체에 특별한 의미부여를 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기도에 대해 단순하게 접근해보면,

우리의 기도가 향하는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응답하시고 능력을 행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에 안수자의 뛰어난 영성이나 능력이 개입될 여지는 전혀 없습니다.

다만 안수자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믿음)과 안수의 대상을 향한 사랑일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자녀들을 위해 축복기도하십시오

자녀에게 손을 얹고, 끌어안고, 그렇게 친밀한 스킨쉽을 통해 사랑의 기도를 하십시오. 그것이 안수입니다.

 

물론 성령의 임재하심의 도구로 사도들의 안수가 사용되기도 합니다

당연히 공동체 안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무분별하게 남용되면 혼란을 일으킬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또한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임명, 임직 등 세우는 일에서의 안수는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안수에 관한 오해는 아마도 우리가 어떤 신비한 능력이라는 옷을 입혀 그것을 바라보려고 하는 까닭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능력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안수에서 오는 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안수보다는 기도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오늘 사랑하는 자녀들을 끌어안고 기도해주시는 건 어떨까요?

복된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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