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 (창세기 4장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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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름없는교회 댓글 0건 조회 1,658회 작성일 19-08-06 22:04본문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너무 잘 알려져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번째 사람인 아담과 하와의 아들들이지요. 가인은 농사짓는 사람었고 아벨은 양을 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고, 아벨도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지만 가인과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신 일로 가인은 화를 냈고, 결국 동생인 아벨을 죽이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아벨의 제사만 받으신 걸까요?
신약의 히브리서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고 기록합니다.
결정적인 차이는 '믿음'이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창세기에 나오는 말씀 안에서 가인과 아벨의 차이는 무엇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먼저, 제물의 차이일까요?
아벨은 양을 치는 사람이었고 가인은 농부였습니다. 당연히 아벨의 소유재산은 양이었고, 가인의 재산은 수확한 곡식이었습니다.
그래서 각각 자신의 소유물을 가지고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의 예배에서 제물이 문제라고 말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제물의 종류를 보시고 차별하신다는 건 억지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아니면, 제사를 드린 사람의 정성의 문제일까요?
오늘 우리들은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없어서 교회 밖에 있을 때에는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잊고 살 때가 많이 있지만,
가인과 아벨은 그 어머니 아버지가 하나님께 직접 지음받은 첫 번째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죄로 인해 에덴동산에서 추방되기는 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고 직접 옷도 해입히시며 보호하고 지키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들은 오늘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과 가까이에서 살며 하나님과 대화하며 친밀하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크고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 예배드리는데 감히 정성을 다하지 않고 예배드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결정적으로 만약에 가인이 정성을 다해서 예배드리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을 때 양심적으로 부끄러워했어야지 도리어 화를 내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화를 냈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불만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의 결정적 차이였던 '믿음'이라는 것은 예배의 겉모습으로 보여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차이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있었다는 것이지요.
오늘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받으신 것이 '아벨의 제물'이 아니라 '아벨과 그의 제물'이라고 분명히 기록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가인과 그의 제물'을 받지 않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그들이 가져온 제물이 아니라, 예배자인 사람에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벨을 받으셨기 때문에 그가 가져온 제물도 함께 받으신 것이고, 가인을 받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가 가져온 제물을 거절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가장 귀한 제물은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결국 드려진 제사 자체에서는 큰 차이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가인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아마도 예배 이전의 가인의 삶의 모습으로부터 문제의 원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5절 말씀에 보니까 하나님께서 가인의 예배를 받지 않으셨을 때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화를 냈다는 것은 지금 이 상황을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겠지요. 예배를 성의없이 소홀히 드린 것도 아니고 정성을 다해서 최선의 예배를 드렸다고 생각했는데,
동생인 아벨은 선택하고 자신은 거절하신 하나님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중요한 문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배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예배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받으실 수도 있고, 받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배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권리입니다.
내가 이렇게 잘 준비했으니까 하나님은 당연히 받으신다고 생각했다면, 그런 생각의 출발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준비된 예배를 드리는 것과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기쁘게 받아주시길 간구하는 것까지입니다. 그것을 받고 안 받고는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가인이 분노함으로써 보여준 문제의 결정적인 원인은 가인 스스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당연히 예배를 받아주셨어야 마땅하다 여겼기 때문에, 예상대로 일이 그렇게 되지 않자 분노가 터져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일이 꼭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만 하는 자신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모든 결정권이 하나님께 달려있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오늘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 발견할 수 있는 믿음의 정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때,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빼앗아오면 내가 생각했던 당연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좌절하고 분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 내 생각과 같지 않아도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 우리 이름없는교회와 성도님들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예배자가 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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