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 믿음으로 (사도행전 19장 中)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름없는교회 댓글 0건 조회 1,541회 작성일 19-05-07 23:05본문
오늘 본문의 배경은 에베소입니다. 에베소는 소아시아 지역의 수도입니다.
2차 전도 여행 때 사도 바울이 그렇게 들어가고 싶어했던 아시아지역, 그러나 성령께서 그 길을 막으시고 바다를 건너 마게도냐(유럽)로 이끄셨던 일을 기억하시지요?
에베소는 아시아 지역에 있는 대도시였고,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인 큰 세력들이 대도시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이곳 에베소에서의 사역은 이미 치열한 영적전쟁이 예고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추측하기로, 2차 전도여행 당시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에게 보다 높은 강도의 영적 훈련들을 받도록 이끄셨던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제는 사도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에 3년이나 머물러 사역을 하면서 제자들을 세우고 교회를 세우는 일들을 할 정도로 에베소 사역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에베소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이 사용하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게 하는 능력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적은 자칫 사도 바울에게로 모든 영광이 돌아갈 수도 있는 위험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기적을 일으킨 바울에게만 집중하고 열광할 위험이 있고, 바울 자신에게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챌 유혹의 위험을 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이 기적사건을 일으킨 능력의 출처가 어디인지를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는데, 11절 처음에,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라고 기록합니다.
사람들이 바울의 손수건을 가져갔지만, 능력은 바울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임을 확실히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사도 바울의 기적 사건이 있고 난 후에, 에베소에서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에베소에는 돌아다니면서 마술을 행하는 유대인들이 있었다고 성경이 알려줍니다.
에베소는 종교적 권세, 마술적 권세가 크게 자리잡은 지역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아데미 여신의 신전이 있었고, 신상을 만드는 사람들이 득세하고 있을 정도로 종교성이 굉장히 강했습니다.
더불어 이방주술이나 마술, 신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쉽게 권세와 명예를 얻을 수 있는 곳이 에베소였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이지만, 실제로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자기 이익을 취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스게와라는 제사장의 일곱 아들들이 등장하는데, 정통 유대인 제사장 가문에서 스게와라는 제사장은 사실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의 일곱 아들이라는 사람들은 이방 땅에서 제사장 가문을 사칭하며 출신과 직업을 결부시켜 명예와 권세를 얻으려고 했던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그저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유대인 출신의 마술사들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에는 분명 능력이 있지만, 누구에게나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더욱이 그 능력은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마술도 아닐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은 믿음으로 예수님과 관계 맺어진 사람에게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이, 하나님을 향한 겸손한 순종의 대가도 없이, 그저 예수님의 이름이라는 껍데기만 내세워서 능력과 명예만을 얻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음이 아닌, 주술적인 의미로 잘못 사용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 마술사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악귀를 쫓아내려고 시도했지만, 능력이 없는 이 사람들은 악귀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누구나 예수님의 이름을 말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능력은 진정 믿음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에게 임하여 역사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사건을 통해 에베소에서는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이름이 드러나고 높여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바울을 통해 나타난 기적들과 더불어 예수님의 이름을 사칭하는 사람들이 당해버린 일을 통해서,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믿게 되었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 자복하며 회개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오늘 말씀에서는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라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에베소는 권세의 중심지였습니다.
황제를 숭상하는 정치적 권세, 이방우상들을 숭배하는 종교적 권세, 더불어 보여지는 현상적인 능력에 빠져있는 마술의 권세, 이러한 큰 권세들이 지역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말씀은 주의 말씀의 능력,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가 그 모든 권세들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떠한 능력에 대한 갈망이 우리 안에는 존재합니다.
그러나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능력에만 집중하고, 능력만 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는 능력이 아니라 능력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고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구하고 믿을 때,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것입니다.
마술에 열광하던 에베소 사람들이, 사도 바울을 통해 진짜 능력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에 회개의 소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소장했던 마술에 관한 책들을 가져와서 불태워버렸는데, 그 책값만 은 오만 정도라고 성경에 나옵니다.
당시 은돈 하나가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한다고 하니까 그 가치와 양은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제가 사도 바울이었다면, 이건 기회라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지금 나를 도와주고 계신다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핑계로 내 생각을 하나님의 뜻 위에 살짝 덮는 것입니다.
우리가 근본적으로 바라봐야 할 목표는 하나님께서 처음 주신 사명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걸 위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때에 따라 변하는 환경에 집중하면 때때로 우리의 본분을 잊고 착각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변하는 환경보다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사도 바울의 결정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그러니까 뭔가 될 것 같은 그런 기대감이 스며들 그 때에 아주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에베소를 떠나겠다.”
사도 바울의 마음은 이미 그렇게 결정되었습니다. 일차적인 목적지는 예루살렘이었습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 2차 전도 여행 당시에 들렀던 곳들을 돌아보고 예루살렘으로 가겠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말이 의미심장한데, “내가 거기 갔다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이것은 자신이 로마로 갈 것이라는 자기 확신에 찬 다짐이 아닙니다. 자신이 로마까지 가야만 한다는 이 말은, 필연적인, 성령의 이끌림에 따르는 예언같은 말입니다.
사도 바울께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자기 인생을 내맡긴 사람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안정과 평안을 꿈꿉니다. 왜냐하면 그런 삶의 안정과 평안이 행복의 기초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보면, 사도 바울은 참 불행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의 삶은 언제나 불안정했기 때문입니다.
고난과 위험이 따라다니는 그의 삶은 어쩌면 사역을 위해 희생만 요구당하는, 하나님의 희생양처럼 보여지기에 충분했을 수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역시나 복음을 전하고, 부흥이 일어나고, 교회가 안정되면 다른 곳으로 떠나는 길을 선택했다. 아마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부르신 이유와 관계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환경보다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단호하게 결단하고 행동 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환경을 통해 보여지는 가능성 보다 하나님의 가능성을 신뢰할 수 있어야만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바로 믿음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