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 부활의 소망 (마 22: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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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름없는교회 댓글 0건 조회 216회 작성일 24-07-03 11:09본문
정치적인 문제로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 했던 바리새인들이 가고,
이번에는 사두개인들이 신학적인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그들은 산헤드린 공회에 속한 제사장들과 관련된 사람들입니다.
사두개인들은 구약성경 중에서도 모세오경의 권위만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모세오경에는 부활에 관한 내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모세오경: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그래서 사두개인들은 신명기에 기록된 수혼법을 가지고
부활의 모순을 지적하려고 했습니다.
수혼법이란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어서 대를 잇지 못한 형제를 위해,
그 아내를 취해 대신 아들을 낳아 대를 잇게 해주는 법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아주 극단적인 상황을 설정하는데,
일곱 형제의 첫째가 죽어서 수혼법에 따라 그 동생이 형수와 결혼을 했고,
그 동생들도 차례대로 죽어서 형수가 일곱 형제와 모두 결혼을 한 상황입니다.
그리고 부활한다면 이 여인은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인지를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두개인들이 제대로 알지 못해 오해하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을 알고 하나님의 능력을 온전히 믿는다면 이런 질문을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 이후의 삶을 현재 이 땅에서의 삶과 동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부활 이후의 삶은 이 땅의 삶과 다르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때는 장가도, 시집도 가지 않고 천사들과 같아질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과의 온전한 회복이 이루어진 것 외에
누구의 아내이고 남편이었는지를 따질 필요가 전혀 없다는 의미입니다.
부활은 하나님 백성에게 영생의 약속이고 소망입니다.
사두개인들은 모세오경만을 믿었지만, 그마저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당시에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이미 죽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었다”라고 말씀하시는 게 맞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현재시제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죽었지만 살아있음을,
즉, 부활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이 믿는 모세오경 안에도 부활의 증거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은 결국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부활 이후의 삶을 소망하는 것보다
현실의 삶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그들은 유대사회 안에서 막강한 부와 권력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현실에 만족하고 안주하려고 한 것입니다.
왕의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자기 일을 핑계로 초대를 거절한 것처럼 말입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놓쳤고, 창조주이시며, 이 세상의 심판자이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실 하나님의 능력도 놓쳤습니다.
하나님은 없고 신념만 남아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하고 소망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죽음을 이기는 부활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죄의 문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완전히 해결되고,
주님과 함께 하는 영광스런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땅의 삶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가는
이름없는교회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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