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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창세기 30장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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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름없는교회 댓글 0건 조회 1,677회 작성일 20-02-11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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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아들들이 태어나는 과정에서 레아와 라헬이 경쟁하듯 자식을 낳는 일에 몰두하며 갈등을 겪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일단 분명하게 전제되어 있는 한 가지 사실은, 태의 열매는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라는 것입니다. 임신과 출산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주시는 은혜라는 것이지요.

29장 마지막 부분에서 레아는 먼저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라는 4명의 아들들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께서 레아가 사랑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다고 말씀합니다.

또한 30장 2절에서 야곱은 라헬에게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랑받지 못하는 레아를 보셨을 때 자비를 베풀어주셨고, 라헬은 하나님께서 자기 언니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신 것을 보았을 때 질투합니다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주신 것을 질투한 것이지요. 그리고 라헬이 본격적인 행동에 들어가는데, 바로 자기 여종을 남편에게 주어서 대신 자식을 얻으려는 계획이었습니다.

라헬은 자기 방법대로 야곱에게 여종 빌하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빌하를 통해 얻은 두 아들이 단과 납달리입니다. 

단이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내 억울함을 풀어주셨다는 뜻이지만, 과연 정말로 하나님께서 라헬의 억울함을 풀어주시려고 단을 주신 것인지는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또한 납달리라는 이름의 뜻은 경쟁함이라는 뜻인데, 라헬의 고백에는 자신이 언니와 경쟁하여 이겼다라고 말했지만

여기에 숨겨진 또 다른 의미는 하나님과의 경쟁에서 이겼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태의 문을 열어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권한이고, 지금 하나님께서 언니의 태는 여시고 자신의 태는 닫아놓으신 상태라고 한다면

자신이 여종의 몸을 빌려서 자기 방법대로 결국 아들을 얻게 되었으니까 자신이 이겼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라헬의 반응에 대해 레아도 똑같이 대응합니다. 자신은 이미 유다를 낳고 출산이 멈췄기 때문에 자신의 여종 실바를 야곱에게 주었는데, 실바가 낳은 아들은 갓과 아셀입니다


이런 경쟁을 할 당시에 레아와 라헬은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요?

 

1절 말씀에 보면 라헬은 자신이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았다고 나옵니다. 그리고 9절 말씀을 보면 레아가 자기의 출산이 멈춤을 보았다고 나옵니다

이 두 여인은 동일하게 자신의 문제에만 매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처음부터 강조되고 있는 분명한 사실은 태의 문을 열고 닫는 것은 하나님의 권한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문제의 해결은 바로 하나님께 있는데, 이 두 여인은 자신의 문제만을 바라보고 거기에 매달려 있었다는 것입니다.

치열한 출산 경쟁 속에서 태어난 4명의 아들들은 누구의 아들들인가? 여종인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이었습니다

레아와 라헬은 서로 시기하며 경쟁하듯이 아들을 낳으려고 했지만, 확실한 것은 그 결과 레아와 라헬은 아들을 얻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과 방법으로 뛰어넘어보려고 도전하기에는 하나님은 너무 높고 크신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이렇게 인간적인 방법으로 아등바등한 레아와 라헬의 아들들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로, 약속을 성취하는 과정에 받아들이시고 사용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뒤로, 합환채 사건이 나옵니다. 레아의 아들 르우벤이 임신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진 합환채를 구해왔습니다. 

레아와 라헬은 합환채를 두고 거래를 했습니다. 라헬은 임신을 위해 합화채를 요구했고, 레아는 합환채를 포기하는 대신 야곱의 사랑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레아의 소원을 들으시고 레아의 닫힌 태를 다시 열어주셨습니다

라헬과 레아는 임신을 하는 것이 합환채의 효험으로서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것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합환채를 가져간 라헬보다 합환채를 포기한 레아의 닫힌 태를 열어주심으로 자녀는 합환채의 효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야말로 그 모든 것은 전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게 되는 것임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있고 나서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라헬의 태를 열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서 보아야 할 부분은, 하나님께서 라헬을 생각하시고 그의 소원을 들으셨다는 구절입니다.

하나님께서 라헬의 소원을 들으시고 라헬을 생각해 주신 게 아니라, 라헬을 생각하시고 그의 소원을 들으셨다는 말은 그녀의 임신이 단지 간절한 소원때문에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라헬을 생각하셨다는 말은 곧, 하나님께서는 라헬을 잊지 않으셨다는 것이입니다

처음부터 라헬을 주목하셨고, 라헬이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오직 임신하는 것에 열중해서 언니를 미워하고 시기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여종을 통해 양자도 삼아보고

세상에 떠도는 소리에 귀 기울여서 합환채를 가져다 사용하기도 할 그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라헬을 마음에 품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도 라헬을 긍휼히 여기셨고 라헬의 소원을 경청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라헬의 간절한 현실 때문에 라헬의 태를 열어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에는 이미 라헬을 향한 생각이 가득차있었고

라헬을 통해 요셉과 베냐민을 주시기로 이미 계획하고 계셨고, 그것을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적인 방법을 찾아 헤맸던 라헬의 어리석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헬을 생각하시고

라헬을 위해 먼저 일하시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오늘 성경은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레아와 라헬처럼 하나님을 주목하지 못하면 인간적인 생각이 앞서 섣부른 행동들을 자초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인간의 본성에서 흘러나오는 사랑은 자신의 만족을 채우는 것을 우선시 합니다그래서 사랑을 할 때도 내가 만족하지 못하면 금새 없었던 것처럼 돌아설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사랑입니다

레아와 라헬처럼 자기만족을 위해 무언가를 계속 소유하려고 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함께 기억하셔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품고사용하시면서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야곱에게 주신 약속을 이루어가시기 위해서 인내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성에서 흘러나오는 사랑은 자신을 비워주고 상대방을 채워주려는 것에 만족이 있습니다 

라헬은 자꾸만 하나님을 실망시켜드렸지만, 하나님께서 결국은 라헬의 인생에 개입하시기로 마음먹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기억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보다도 우리를 생각해주시는 분이십니다. 부모가 내 자식들 잘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가 하나님의 선한 길을 따라가기를 바라시며 끊임없이 우리를 생각하시는 분이십니다.


때로는 우리가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또는 우리의 상황이 바닥을 치고 있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만스러울 때도 있겠지만

그런 방식의 응답조차도 결국은 나를 위한 하나님의 생각임을 믿으시고 더 하나님의 뜻을 간구하며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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