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 순종하는 사람의 기도 (창세기 25장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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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름없는교회 댓글 0건 조회 1,551회 작성일 20-01-08 00:39본문
이삭의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는 장면을 봅니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이삭과 리브가가 보여주는 ‘순종하는 사람의 기도’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순종하는 사람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십니다.
이삭과 리브가는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쳤습니다. 리브가가 임신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이삭의 아내 리브가는 왜 임신하지 못했을까요? 하나님은 왜 임신하지 못하는 리브가를 이삭의 아내로 선택하신 걸까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2대에 걸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와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을 못하는 여인이었다는 것은 과연 우연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입니다.
사라와 리브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계보를 이어가는데 정말 중요한 사람들인데, 정작 이 두 여인에게는 그것을 이루어 낼 능력이 없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능력으로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낼 수 없다는 것을 이 두 여인을 통해 성경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께서 이루어가신다는 것, 모든 역사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역사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시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종하는 사람은 이러한 고백을 전제하고 그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이삭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21절 말씀은 그런 의미에서 참 중요합니다.
(21)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이삭이 임신하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했고, 하나님께서는 이삭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 결과 리브가는 임신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 안에 계획되어 있었고,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지만, 그렇게 일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삭의 기도를 사용하셨습니다.
앞서 24장에서 등장한 종의 기도 역시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리브가를 준비하셨지만 종이 기도하는 순간, 그 기도를 사용하셔서 기도가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를 만나도록 이끌어주셨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순종하는 사람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사용하십니다.
두 번째, 순종하는 사람은 인내하며 기도합니다.
21절 한 절 안에서 이삭이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 리브가의 임신 사실이 한 번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 기도가 신속하게 응답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20절에서 이삭이 리브가와 결혼할 때 나이가 40세였고, 26절에서 에서와 야곱이 태어날 때 이삭의 나이가 60세라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삭은 리브가와 결혼하고 무려 20년 후에 아들들을 낳은 것이지요.
이삭이 기도하기로 마음먹은 시점이 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성경에서 그 때를 드러내지 않은 이유는 이삭의 기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점은 이삭이 리브가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는 이삭의 기도를 들으셨고, 응답하셨다는 것이기 때문에, 핵심만 간략하게 한 구절로 정리해 놓은 것으로 보입니다.
기도는 순식간에 응답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그렇지 않을 때가 우리에게는 훨씬 더 많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고향을 떠나서 100세에 이삭을 낳았습니다.
25년을 기다리면서 양자를 삼아볼 생각도 했고, 여종의 몸을 빌려 아들을 낳을 시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삭은 20년을 기다리면서 아들을 낳기 위해 시도한 일들이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 뿐이었다는 것은 굉장히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하신다”는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순종하는 사람은 기다림에 익숙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이루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때는 정해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믿고 아는 사람은 기다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삭이 했던 인내의 기도입니다.
세 번째, 순종하는 사람은 절망 가운데에서도 기도합니다.
(22) 그 아들들이 그의 태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22절에는 리브가의 뱃속에서 싸우는 두 아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리브가는 '내가 어찌할꼬'하며 가서 여호와께 물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우리는 리브가의 태중에 쌍둥이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당시 리브가는 태중의 아이가 아들인지, 딸인지, 심지어 쌍둥이일 줄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쌍둥이 아들이 리브가의 뱃속에서 서로 싸웠다는 말은 성경이 우리를 위해 설명해주는 말이지요.
에서와 야곱이 앞으로도 계속 싸우게 될 것이라는 상징적인 의미이기도하고,
실제로 어머니의 한 뱃속에서 두 아이가 치열하게 싸웠다는 말은 뱃속의 아이들이 지금 이 어머니를 굉장히 힘들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싸운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봐서 아마도 리브가는 임신으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어떡하죠?”라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당하는 고통이, 어쩌면 자신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겠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에 나온 물음일 수 있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이러다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느낌, 아니면 뱃속의 아이가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나온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지금 리브가가 하나님 앞에 “어떡해야 합니까?”를 울부짖고 있는 이 상황은 리브가에게 있어서는 처절한 고통의 순간이었다는 것입니다.
20년의 기다림과 그 기다림 끝에 얻은 결실로 인한 기쁨이 처음에는 얼마나 컸을까요?
그러나 기대와 기쁨이 컸던 만큼 지금 리브가가 느끼는 고통와 두려움은 한 순간에 리브가를 절망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한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그 절망의 상황 한 가운데에서 리브가는 지금 하나님께 어찌해야 할지를 묻고 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애굽을 빠져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잠깐 사이에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을 의심하고 원망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오늘 리브가는 몸과 마음이 찢기는 고통과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하나님께 간구하기를 선택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믿음의 행동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리브가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하나님께서 리브가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선택하신다는 것과 그 과정에서 에서와 야곱의 다툼과 갈등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물론 당시 리브가는 이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응답을 들음으로써 지금 당하는 고통이, 내가 두려워하거나 염려할 것은 아니라는 위로를 얻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리브가의 고통을 당장에 없애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응답은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위로의 힘은 분명 우리에게 소망이 됩니다.
고통 중에 있지만 우리는 안전하다는 위로, 태어날 내 아이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약속의 아이가 될 것이라는 소망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때까지 지금 당하는 고통을 참고 견딜 수 있는 힘이 됩니다.
기도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기도는 결코 쉬운 일이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하신다”는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인내하며 기도합니다. 고통과 절망 중에도 기도합니다.
그리고 오직 기도만이 답이라는 것을 아는 순종하는 사람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기도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는 이름없는교회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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