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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 그들이 옷을 찢고 (창세기 44장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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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름없는교회 댓글 0건 조회 1,603회 작성일 20-05-2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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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3장의 마지막은 형제들이 요셉과 함께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는 장면으로 끝났습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자신들의 누명을 벗었기 때문이고, 그로 인해 곡식을 사갈 수 있게 된 것과 인질로 잡혔던 시므온을 되찾은 것과 

어렵게 데려온 막내 베냐민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안심에서 나온 것이라 보여집니다.  


그러나 요셉의 계획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은잔을 베냐민의 자루에 몰래 넣고 형제들을 다시 한 번 시험합니다.

영문을 알 수 없었던 형제들은 자신들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생명을 걸었고, 만약 그럴 경우에 요셉의 종이 될 것을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요셉의 잔은 베냐민의 자루에서 나오게 되어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형들의 흥미로운 반응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베냐민의 자루에서 은잔이 나왔을 때 형들이 옷을 찢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행동은 말보다 더 큰 것을 의미합니다

과거에 요셉이 없어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오직 아버지 야곱만이 옷을 찢고 슬퍼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옷을 찢는다는 것은 극한의 슬픔을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베냐민만 애굽총리에게로 돌려보낸 것이 아니라 자기들도 함께 성으로 돌아갔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이 장면이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줍니까? 요셉의 형들은 더 이상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 놓고 죽이려고 했었던 과거의 형들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 형들은 이미 변해있었습니다. 배다른 동생이지만, 아버지의 편애를 받는 막내동생이지만, 미워하거나 시기하지 않고, 아버지의 마음으로 동생을 보살피고 생각하는 형들이 되어있었습니다.

 

요셉이 형제들을 함정에 빠뜨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요셉은 마지막으로 형들의 마음을 시험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에 자신을 구덩이에 던져 넣었듯이, 베냐민을 함정에 빠뜨렸습니다

요셉의 최종 목적은 형들에게 예전과 같은 상황을 던져주고 그들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보려고 한 것입니다그래서 막내인 베냐민을 희생하는 상황으로 몰고간 것이지요.

그런데 이미 형들은 달라져있었습니다. 동생을 위해 슬퍼하는 형들이 되어있었습니다

동생을 희생시켜서 자신들의 안위를 구하는 형들이 아니라, 동생을 위해 자신들을 희생할 각오를 다짐하는 형들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형들의 태도는 과거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행동일 것입니다. 

 

우리 안에 죄에 대한 뉘우침이 있다면, 우리의 행동은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진심으로 뉘우친다면 같은 잘못을 반복하도록 그 삶을 내버려둘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자성어 중에 '결자해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묶은 사람이 풀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죄를 지었으면 회개해야 하고, 잘못을 저질렀으면 당연히 용서를 구해야합니다

그런데 이 말이 우리가 자기 죄에 대해 하나님 앞에 회개기도를 하면 다 된다는 의미로만 받아들여지면 안됩니다.

 

(5: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하나님 앞에 나가기 전에 죄로 인해 틀어진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먼저 용서를 구하고 와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지만, 다시 쏟지 않도록 주의하고, 엎질러진 물은 얼른 닦아서 치워버려야 됩니다

그 일을은 다른 누군가가 해주는 게 아니라 내가 나서서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먼저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에는 이렇게 나온다.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이 부분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겠다는 고백이 아닙니다

우리가 먼저 용서하겠으니 우리의 죄도 용서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용서를 베푸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마태복음 안에서도 한 쪽에서는 잘못했으면 먼저 용서를 구해야 된다라고 가르쳐주고 있고, 다른 한 쪽에서는 다른 사람이 잘못했어도 먼저 용서를 베풀어야 된다고 가르쳐줍니다.

용서라는 것은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입니다.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동시에 용서를 베풀어주는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그렇게 해야한다고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요셉은 이미 마음으로 형들을 다 용서했습니다. 다만, 형들의 태도가 어떠한지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형들의 태도가 달라져 있었고, 요셉이 그것을 확인한 것입니다.

적절한 시기를 놓쳐서 관계를 회복시키지 못하고 서먹해지고, 멀어지게 만드는 경험을 해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내가 용서를 구해야하는 입장이 되었을 때는 먼저 나서서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내가 용서를 베풀어야 하는 입장이 되었을 때는 먼저 용서를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어느 편에 서있든지 먼저 나서서 관계를 회복시키는 진정한 회복의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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